양가 용돈 온도차, 효도의 환율이 다른 부부
이 글의 핵심
양가 용돈 갈등은 금액 싸움이 아니라 환율 싸움이다. 각자 원가족에서 효도의 화폐 단위(돈, 전화, 방문, 노동)가 달랐고, 서로 자기 환율로 상대를 환산하며 야박함과 계산적임을 오간다. 봉투에는 부모의 존중, 각자의 부채감, 형평의 장부까지 담겨 있어 회계가 아니라 정치가 된다. 합의는 세 가지다. 양가 총액과 봉투 균등 원칙을 각론보다 먼저 정하고, 돈 아닌 효도도 화폐로 인정하고, 각자의 부모는 각자가 창구가 된다. 용돈 얘기마다 각자 부모의 변호사가 된다면 부부상담에서 원칙을 함께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명절 전날, 봉투 두 개
명절 사흘 전 밤. 식탁 위에 흰 봉투 두 개가 놓였다. 남토가 볼펜으로 봉투에 이름을 쓰다가 말했다.
"어머니 삼십, 장모님 이십이면 되겠지?"
"...왜 달라?"
"우리 집은 형이 없잖아. 내가 장남이고."
"우리 엄마는 딸이 나 하나야."
봉투 두 개 사이의 십만 원이, 그날 밤 두 시간짜리 침묵이 됐다.
여토와 남토는 상담실의 수많은 부부를 모아 만든 앤토 부부예요. 양가 용돈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공기가 팽팽해지는 집이라면, 이 글이 그 봉투 얘기입니다.
양가 용돈 싸움은 왜 금액으로 안 끝날까?
십만 원 차이가 문제라면 십만 원을 맞추면 끝나야 해요. 그런데 맞춰도 앙금이 남습니다. 상담실에서 보는 이유는 이래요.
상담실 메모. 양가 용돈 갈등은 금액 싸움이 아니라 환율 싸움입니다. 각자 원가족에서 효도의 화폐 단위가 달랐어요. 어떤 집은 돈이, 어떤 집은 전화가, 어떤 집은 김치 얻어 오는 일이 효도였죠. 내 집의 십만 원과 저 집의 십만 원은 같은 돈이 아닙니다.
돈으로 효도하는 집에서 자란 사람에게 봉투 금액은 마음의 크기예요. 전화와 방문으로 효도하는 집에서 자란 사람에게 봉투는 여러 화폐 중 하나고요. 그래서 한쪽은 "왜 이렇게 야박하냐"가 되고, 다른 쪽은 "왜 돈으로만 따지냐"가 됩니다. 둘 다 자기 환율로 상대를 환산한 결과예요.

봉투에 같이 담겨 있는 것들
용돈 봉투가 유독 예민한 건, 그 안에 돈 말고도 여러 개가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 내 부모가 존중받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 봉투가 얇으면 부모가 얇아진 기분이 됩니다
- 결혼하며 각자 데려온 부채감. 장남이라서, 외동이라서, 유학을 보내 주셔서
- 그리고 형평의 장부. 지난 명절, 지난 생신, 지난 김장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세 겹이 겹치면 봉투는 회계가 아니라 정치가 됩니다. 가족을 사이에 둔 부부 갈등의 구조는 양가 부모 부양 대화를 다룬 글에서도 볼 수 있어요. 원가족과의 관계가 부부 갈등으로 번지는 흐름은 관계 연구에서도 오래 다뤄 온 주제입니다(미국심리학회의 가족 자료 참고).
환율 분쟁을 끝내는 세 가지 합의
다음 날 저녁, 여토가 봉투 대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올해 양가에 쓸 총액부터 정하자. 그 안에서 나누는 걸로."
"...총액?"
"응. 그리고 봉투 금액은 무조건 같게. 대신 각자 부모님한테 더 하고 싶은 건, 자기 용돈으로."

- 총액과 균등 원칙을 먼저 합의하세요. 어느 집에 얼마를 따지기 전에, 올해 양가 전체에 쓸 예산과 봉투는 같은 금액이라는 원칙부터요. 각론에서 시작하면 매번 협상이지만, 원칙에서 시작하면 계산만 남습니다.
- 돈 아닌 효도도 화폐로 인정하세요. 매주 전화를 드리는 것, 김장을 도우러 가는 것,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 이런 것들을 장부에 함께 올리면 봉투 금액의 부담이 줄어요. 각 집의 환율을 서로 인정하는 겁니다.
- 각자의 부모는 각자가 창구가 되세요. 시가 얘기는 남토가, 처가 얘기는 여토가 각자 부모님과 정리하는 거예요. 배우자를 자기 부모 앞에 전달자로 세우는 순간, 부부 갈등이 가족 갈등으로 커집니다.
봉투 두 개의 무게가 같아지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봉투를 쓰는 두 사람이 같은 편에 서는 것.
다음 명절 전날 밤에는 봉투보다 먼저 이 문장을 꺼내 보세요. "우리 올해 예산부터 정할까?" 봉투는 그다음에 채워도 늦지 않습니다.
이런 신호가 보인다면. 양가 용돈 얘기가 나오면 각자 자기 부모의 변호사가 된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금액이 아니라 원칙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신호예요. 부부상담에서 우리 부부의 원칙 세우기 →
감수 · 이인수 심리상담연구소 앤아더라이프 대표
- (전) 한국상담학회 부부·가족상담학회 회장
- (전) 한국가족치료학회 자격관리위원장 · (전) 상명대학교 복지상담대학원 가족상담치료학과 교수
- University of Pennsylvania 임상사회복지 석사(MSW) · 경희대학교 가족상담 전공 박사
- 서울가정법원 가사상담위원 · 『가계도: 사정 및 평가』 『보웬이론의 비밀』 등 저·역서 다수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인의 상황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