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가 사라진 부부, 당연함이 관계를 갉아먹는 속도
이 글의 핵심
부부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은 고마움이 아니라 표현이다. 가족이 되면 서로의 수고가 디폴트가 되고, 디폴트가 된 수고는 공기처럼 취급된다. 당연함은 편안함의 증거라서 침식이 조용히 진행된다. 연구들은 감사 표현과 관계 만족도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표현은 받는 쪽뿐 아니라 말하는 쪽의 시야도 바꾼다. 연습은 세 가지다. 하루 한 건 당연한 수고를 소리 내고, 고마워에 목적어를 붙이고, 받는 쪽은 뭘 그런 걸 가지고 같은 금지어를 없앤다. 수고가 보이지 않는 서운함이 쌓였다면 부부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저 소리만 남은 저녁
저녁 일곱 시 반. 여토가 뚝배기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남토는 폰을 보며 자리에 앉았고, 숟가락을 들었고, 먹기 시작했다.
십 년 전, 같은 식탁에서 남토는 "우와, 이게 뭐야?"라고 했었다. 팔 년 전에는 "잘 먹을게"였고, 오 년 전에는 "어, 왔어"였다. 오늘은 수저 소리뿐이다.
"...맛이 어때?"
"어? 어. 먹을 만해."
여토는 그날 밤 설거지를 하며 이상하게 물이 차갑다고 생각했다.
여토와 남토는 상담실의 수많은 부부를 모아 만든 앤토 부부예요. 고맙다는 말이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 집이라면, 오늘은 그 말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마움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남토에게 고마움이 없어진 걸까요. 상담실에서 물어보면 대답은 의외예요. "고맙죠. 당연히 고맙죠.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상담실 메모. 사라진 건 고마움이 아니라 표현입니다. 가족이 되면 서로의 수고가 디폴트가 돼요. 밥은 원래 있는 것, 세탁은 원래 되는 것. 디폴트가 된 수고는 공기처럼 취급됩니다. 분명히 있는데, 아무도 보지 않죠. 문제는 공기 취급을 받는 쪽의 마음이 조금씩 산소를 잃는다는 겁니다.
당연함은 편안함의 증거이기도 해요.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나빠서가 아니라 편해서 생기는 침식이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진행되거든요.

말 한마디가 정말 그렇게 중요할까?
"굳이 말로 해야 하나, 마음이면 됐지"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감사 표현을 다룬 관계 연구들의 답은 꽤 일관됩니다. 배우자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또 감사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관계 만족도와 단단히 묶여 있어요(미국심리학회의 감사 자료 참고). 받는 쪽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말하는 쪽도 말하는 순간 상대의 수고가 눈에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표현이 마른 식탁의 풍경은 부부 대화법 글에서도 다뤘지만, 감사는 대화 기술 이전의 문제예요.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의 문제죠.
공기에 다시 이름을 붙이는 세 가지 연습
그 주 수요일 저녁, 남토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멈췄다.
"이 국, 아침에 끓인 거야? 출근 전에?"
"어.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났어."
"...고마워. 국 끓여 줘서."
여토가 잠깐 웃었다. "뭐야, 갑자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날 설거지 물은 차갑지 않았다.

- 하루 한 건, 디폴트에 영수증을 끊으세요. 당연하게 받은 것 중 하나를 골라 소리 내는 연습입니다. 밥, 빨래, 등원 준비, 벌레 잡기. 대단한 것 말고 매일 있던 것일수록 좋아요. 공기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니까요.
- 고마워에 목적어를 붙이세요. "고마워"보다 "국 끓여 줘서 고마워"가 세 배쯤 멀리 갑니다. 목적어가 있어야 상대는 내 수고 중 무엇이 보였는지 알 수 있어요. 보였다는 사실이 감사의 본체입니다.
- 받은 쪽의 금지어를 하나 정하세요. "뭘 그런 걸 가지고." 겸손처럼 보이는 이 말은 표현의 싹을 자릅니다. 어색해도 "알아줘서 기분 좋네"로 받아 주세요. 감사는 주고받는 연습이 쌓여야 회로가 됩니다.
공기는 없어질 때에야 존재가 드러나요. 관계에서는 그 순서를 기다리면 늦습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앉기 전에 한 번만 둘러보세요. 원래 있던 것들 중 하나를 골라, 원래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해 주세요.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차가운 설거지 물을 데웁니다.
이런 신호가 보인다면. 내 수고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날이 쌓인다. 혹은 배우자의 수고에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말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공기 취급이 시작됐다는 신호예요. 부부상담에서 서로의 수고 다시 보기 →
감수 · 이인수 심리상담연구소 앤아더라이프 대표
- (전) 한국상담학회 부부·가족상담학회 회장
- (전) 한국가족치료학회 자격관리위원장 · (전) 상명대학교 복지상담대학원 가족상담치료학과 교수
- University of Pennsylvania 임상사회복지 석사(MSW) · 경희대학교 가족상담 전공 박사
- 서울가정법원 가사상담위원 · 『가계도: 사정 및 평가』 『보웬이론의 비밀』 등 저·역서 다수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인의 상황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